개요 | 2000 | 1990 | 1980 | 1970
 


손현수회장이 부산 대현지하상가 개발을 추진하던 70년대 말까지만해도 부산서면은 동서를 연계하는 교통의 요충지이기는 했지만 상권형성에 있어서는 광복동,남포동으로 대변되던 중심상권과 비교해볼때 상대적으로 미흡한 실정이었다.

또한 혼란하던 시국상황으로 개발인가가 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는데 무려 185번이나 서울과 부산을 오르내린 손현수회장 의 집념끝에 건설공사에 들어갈수있었다.


대현지하상가 개발이후 서면은 일일 유동인구 30만을 자랑하는 부산의 중심상권으로 성장하였다.한편 대현지하상가는 부산지하철 1호선의 착공을 1년 앞당기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1981년 12월 22일 마침내 1공구의 준공개장을 하게 되었으며, 82년 12월 22일 마침내 완전 개장하게 되었다. 81년에는 1공구 홍보전략으로 미스 부산대회를 후원했던 대현실업(주)은 82년에는 인기연예인 팬사인회 및 일일판매를 실시하여 많은 호응을 얻었다.


2000년대 중부권 개발의 핵심도시로 부상하고 있던 청주시에 개발한 대현지하상가는 청주시는 물론 충청북도 최초의 지하상가로 지하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시발점이 되었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개발된 (87. 6.27) 청주대현지하상가는 그 설비나 인테리어 부문에 있어서 당대 최고를 목표로 하여 진행되었는데 폭 6m의 공공 보도, 26.44㎡에 이르는 넓은 점포면적 등은 국내지하상가 사상 처음으로 시도한 혁신적인 설계였다.

"지하상가라면 청주의 것을 보지않고는 이야기를 꺼낼수 없을 정도로 멋진 작품을 만들어 보겠다" 건설공사 착공에 앞서 손현수 회장이 시민들과 한 약속처럼 청주대현지하상가는 최신 설비, 인테리어로 지하상가의 품격을 한단계 높여준 작품이었다.

 





Copyrightⓒ daehyun.com | All rights reserved